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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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결의(決意)

로버트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
대전시유성구 구성동373

조선일보 2004년 12월 27일
[번역: 이현경]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새출발과 그 성취를 위해 마음을 다잡는 일의 어려움을 많이 이야기하게 된다. 보통 화제는 살빼기나 생활비 줄이기, 혹은 옷장의 필요없는 옷 내다버리기 등이다.

과학기술 교육자들도 남들처럼 이맘때면 여러 가지 결심을 품게 된다. 보통사람과 다른 점이라면 그 주제가 살빼기보다는 개혁에 관한 것이란 점이다. 그러나 개혁과 감량은 개념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그 차이점을 사람들이 잘못 알기도 한다. 사람들이 식습관을 되살펴보고 그것이 생각처럼 균형잡히지 않고 있음을 발견한다면, 에너지 소모에 필요한 만큼만으로 음식 섭취량을 맞춰나갈 것이다. 또는 연구 관행을 재점검하여 연구가 생각만큼 쓸모있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쓸모 있는 만큼만 연구비를 지출하도록 조정해 나갈 것이다.

과학기술 교육의 개혁 필요성은 한국에서만 각별한 것이 아니다. 다른 모든 선진국들에서도 이딜레마는 본질적으로 같다. 경제가 점점 복잡다단해짐에 따라, 전통적인 엔지니어와 교수들은 과거보다 훨씬 적은 숫자만 필요해지고, 대신 기술적 소양을 가지면서도 폭넓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더 필요해진다. 과학과 공학 전문가의 배출을 극대화하도록 만들어진 제도는 결국 공급과잉을 낳기 십상이어서 (그들의) 값을 떨어뜨리게 된다. 그것은 점점 더 기술화되어 가는 나라에서 충격적인 결과다.

따라서 연구대학의 개혁은 곧 대학을 시장에 대응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지금 전 세계적으로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데, 누구도 완전히 만족스런 해결책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이 문제는 학부 대학 차원에서 풀기가 더 쉽다. 왜냐하면 시장의 수요가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학부모들이 정확히 알기 때문이다. 공립 대학들이 나아갈 길은, 좀더 저렴한 비용으로 학생들에게 고등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본연의 사명을 팽개치지 않고서도, 사립학교들처럼 좀더 학부모들의 기대를 감안하는 쪽으로 바뀌는 것이다. 지금 미국의 주요 주립대학들 대부분이나 일본의 공립 대학들이 나가고 있는 방향이 바로, 점진적으로 사립대학처럼 바꿔나간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대학원 수준에서는 개혁 문제가 더욱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연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엄청난 시장 왜곡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대학원의 정확한 시장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의 하나로, 대학원에서 이뤄지는 연구에 대한 학부 학생들의 관심과 진학 의사 여부를 활용하는 방안이 흔히 거론되고 있다.

만일 연구대학들이 시장을 발견하기 시작한다면, 전문 기술직을 추구하는 미래 세대의 학생들 은 유연하고 대담하면서도 멋지게 사고(思考)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안정적'이었던 여태까지의 기술직의 삶과는 정반대이다. 나는 이 같은 태도의 변화야말로 과학기술을 살려나가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렇다.

나는 최근 한 한국 학생이 바흐의 어려운 피아노곡을 대단한 통찰력으로 멋지게 연주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나는 하도 감동스러워서, 연주 후에 그 학생에게 앞날의 직업적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관해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걸 행복하게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전공이 무엇인지를 밝히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길을 잘못 든 것 아닌가 싶었다. 나는 우울한 기분에 빠졌다. 그날 저녁 내내 내 머릿속에서는 존 그린리프 휘티어의 시(詩) '모드 멀러 (Maude Muller)' 의 마지막 구절이 맴돌고 있었다.

흘러간 젊은 날의꿈을 막연히 그리워하는
그들을, 우리를, 신이여 불쌍히여기소 서.
세상의 모든 슬픈말과 글 중 제일서글픈 건
'그럴 수도있 었는데'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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