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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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들을 죽이자’

로버트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
대전시유성구 구성동373

조선일보 2005년 7월 22일
[번역: 이현경]

많은 이론물리학자들처럼, 나 역시 변호사 집안 출신이다.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물리학과 법률 간에 연관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아마도 유전적 관계도 있는 것 같다.

법률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조크는 셰익스피어가 지은 '헨리 6세'의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모든 변호사를 죽이는 것"이라는 구절이다. 내 아버지는 이 구절을 아주 좋아해서 그의 사무실에 걸어두었다. 그 글귀는 매끈한 머리에 비싼 양복을 입고 펼쳐진 책을 들고 서있는 작은 동상의 받침대에 새겨져 있었다. 또한 그 동상에는 권총을 쥐고 그 사나이의 머리를 겨냥한 커다란 손도 같이 조각돼 있었다. 아버지는 이 동상이 의뢰인들과 좋은 출발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변호사들은 셰익스피어의 이 조크를 부분적으로는 오래됐기 때문에 좋아한다. 확실히 400년 전의 영국인들은 현재 우리처럼 법률에 대해 화가 나 있었고, 그 문제를 해결키 위해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나는 4백년 뒤의 사람들도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조크는 언제까지라도 재미있을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한국은 서구적 감각에서 '법률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모든 중요한 사항들이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협정들은, 때로는 매우 중요한 것들조차도, 대개는 구두로 이뤄진다. 사람들은 종종 결의사항들을 적거나 대화 · 사고과정을 문서화하는 것, 그리고 규칙과 결정을 공개적으로 기록하는 것, 그들의 생각을 활자로 표현하는 것을 몹시 꺼린다. 몇몇 동료 교수들은 이런 현상이 일제 식민통치의 불행한 부작용에서 비롯됐다고 말해주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들이 깊은 문화적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전통은 한국인에게 서양인들보다 어떤 면에서는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만약 다른 사람의 기술을 '차용( 借用 )'하고자 한다면,  지적 재산권 관련 법규가 애매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은 분명 유리하다.  하지만 내 자신의 기술을 도둑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한다면, 그들에게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는 잘 정비된 법이  유리하다. 마찬가지로, 만약 내가 시간과 투자할 자본이 있더라도, 취약한 법은 경쟁자들이 손쉽게 내 신기술을 도용해서 판매하게 하므로, 나의 기술개발 의욕을 꺾는다. 그것은 내 투자를 귀금속이나 상해의 콘도처럼 안전한 쪽으로 전환시킨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법제화는 고쳐야 할 질병이 아니라 미래의 경제발전을 위해 요구되는 자연스런 발전과정인 것이다. 한국인들은 그것을 허용 할 지 말 지를 결정하고, 그 결과를 주시해야 할 것이다.

기록에 대한 서양인들의 열정이 그들의 종교적 전통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안다면 한국인들이 이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법은 통치자이다"라는 것은 서양인들의 중심 개념이다. 명백하게 쓰인 법규들은 영구적이며 인간의 기억처럼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법규를 만든 사람들보다 더 커다란 도덕적 권위를 가진다는 것이다. 즉, 기록은 '신성한' 것으로 군주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따라야만 한다. 기록으로 자신을 표현하면 뒷날 제3자가 자신이 말한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책임 있게 만든다. 우리가 변덕스럽게 법을 바꾸거나, 법의 내용을 고의로 오역하거나, 중요 관계를 단지 구두( 口頭 )로 허락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행위가 비윤리적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법의 통치가 확립되기에는 수세기가 걸렸으며 정치적으로도 아주 어려웠다. 셰익스피어가 변호사들을 죽여야 한다고 제안했을 무렵인 1644년, 새뮤얼 러더포드가 지은'법에 의한 통치'라는 책이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서 출간됐다. 당시 국왕은 이책에 담긴 법의 절대성 주장은 군주에 의해 민중을 선동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책을 가진 사람은 사형에 처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은 1688년 명예혁명 때까지 계속됐다. 유럽 대륙에서도 약간 뒤에 비슷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역사는 그러므로 한국인들에게 변호사를 다 죽이기 전에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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