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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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생명인가?

로버트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
대전시유성구 구성동373

조선일보 2005년 7월 2일
[번역: 이현경]

지난번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 안에서 나는 아주 예쁜 아기와 장난을 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비행기 뒤편에 있는 기내 화장실을 사용하려고 줄을 서 있는 동안에 일어났다. 그 여자 아기는 자신을 안고 있는 한 남자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여기저기를 초점 없이 둘러보다가 내 눈길과 마주치게 됐다. 그 아기의 눈은 고정됐고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얼굴이 마치 남극대륙의 모든 얼음을 녹여버릴 듯한 따사로운 미소와 함께 빛났다.

아버지로 보이는 사내가 머리를 돌려 미소를 띠었을 때 나는 그에게 몹시 예쁘고 특별한 아기를 가졌다고 칭찬하려 했다. 그 여자 아기는 “정말로 특별하다”고 그 남자는 인정했다. 미국으로 입양되어 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아버지가 아니라 단지 전달자였던 것이다. 그 아기의 친어머니는 한국 학생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문제는 어린 아이가 해외로 입양된다는 점이 아니었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아기의 젊은 친부모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상처로 고통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아기의 친부모들은 틀림없이 매우 유능하고 아름다운 학생이었을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의 내 복잡한 감정은 인간 배아복제에 성공한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실험을 둘러싼 논쟁의 본질을 아주 잘 보여준다. 나는 황우석 교수와 그의 실험을 지지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존재한다. 그 이유는 신체의 손상된 부분을 대체하기 위해 배아를 복제하지만, 그 과정은 인간을 창조할 수 있고, 또 편의적인 이유 때문에 이를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이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좋든 싫든 간에, 이제 한국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 수준 기술에 필적하는 세계 수준의 법을 제정해야 할 임무가 부여됐다.

나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종국에는 세포는 인간이 아니라는 원칙을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황 교수와 같은 연구자들은 평온하게 일하게 될 것이다. 성인의 신체는 대략 50조 개의 세포들로 구성돼 있다. 이 세포 하나하나는 모두 성체(成體)가 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신체에 있는 모든 세포가 인간이라는 사고는 터무니없다. 세포 내에 존재하는, 인간이 되게끔 하는 능력은 실제 인간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모래 한 알과 해변, 또는 공기 분자와 바람의 차이와 같다. 어느 경우에나, 중요한 것은 작은 부분들로 이루어졌지만 그것들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다른 부분들도 마찬가지로 훌륭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임신 순간에 갑자기 인간이 된다기보다는 단계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 보다 알맞다. 이는 또한 우리의 권리도 단계적으로 커져 가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종류의 원리들은 이미 대부분의 법률에, 특히 미성년자와 성인 간 권리의 차이를 통해, 구현되어 있다.

자연에서 현미경에 보이는 것이 모두 중요하다는 입장과 그것이 종합됐을 때 새로운 ‘창발(創發)적’ 의미가 생긴다는 입장의 충돌은 단지 생식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문명의 여러 분야에서 동시에 전개되는 위기이며, 내 전공 분야인 물리학에서는 보다 확연하다. 나는 최근 이에 관한 책을 저술했으며, 관심 있는 사람은 그 책에서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그 핵심은 양자의 충돌이 이념적이라는 것이다. 사물의 의미가 그 부분들에 포함돼 있다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라 믿음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고에 너무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과학적 실험으로도 제거할 수가 없다. 문제가 되는 시스템이 원시적이고 실험이 단순한 물리학에서는, 그런 생각이 잘못이라는 압도적인 증거가 있다. 물리학의 가르침을 생물학에 일반화할 수 있을지는 논란거리이지만 나는 생명이 물리적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행기에 있던 그 어린 아기는 보통 어린 아기들이 그렇듯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듦으로써 삶을 쟁취하려는 분명한 인간이었다. 그 어린 아기의 고통은 좌절된 세포들이 아니라, 아마도 보다 원시적인 사회라면 더욱 치명적이 될 수도 있었을 잘못된 관계에 의한 것이다. 그 어린 아기가 가르쳐 주는 교훈은 인간의 생명이란, 인간의 신체처럼, 세포들이 아니라 거대한 관계의 탑이라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보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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