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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정복하기란 쉽지 않다. 수많은 단어를 암기하고 책을 읽어도 외국인 앞에만 서면 주눅 들기 일쑤고 문화적 간극은 좀체 좁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나이 서른을 넘어 영어란 괴물을 정복한 사내가 있다. 현재 로버트 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의 영어비서로 활약하고 있는 이현경(37) 씨가 그 주인공이다.
늦깎이 영어 학도였던 그는 언어 정복을 위해 남들처럼 수백 권의 회화 책을 암기하고 영어사전을 밑줄 치고 공부했다. 그에 힘입어 1999년에는 샌프란시스코 한국일보 기자를 거쳤고, 이후 IBM 실리콘밸리 지사에서 잘나가는 비즈니스맨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세 시련이 찾아왔다. 상대방의 손을 힘껏 잡고 악수하지 못해 ‘자신 없는 비즈니스맨’ 대접을 받기도 했고, 미안하다는 뜻으로 한 ‘I am sorry’라는 표현으로 해고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비즈니스에서 ‘아이 앰 소리’란 ‘제 잘못을 인정한다’는 뜻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영어의 도를 깨우치기 위해 방황하기를 수차례. 그는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겪은 ‘영어 방랑기’를 책으로 묶어 냈다. ‘이제 네이티브와 자연스럽게 대화해볼까’라는 책 제목이 그의 경험을 잘 대변한다. 그는 “영어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채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가 고생하면서 경험했던 것을 한국인의 눈높이에 맞춰 책을 썼다”며 “머릿속에 꽉 박혀 있는 문법, 단어 그리고 숙어에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영어의 도(道)’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제 그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영어가 무섭지 않고 영어로 말하는 게 즐거운 수준이 됐다. 2004년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사이언스타임즈 기자로 활약했고, 노벨상 수상자인 러플린 총장을 국내 최초로 인터뷰한 인연으로 그의 수석비서로 자리를 옮겼다. 러플린 총장은 이 씨를 자신의 최고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으며 그의 진취적인 모험가 정신에 깊은 신뢰감을 내비쳤다. (끝)